블챌 끝나고 나서도 매일매일 안 빠지고 일기 썼는데,
토요일은 시위 가고 일요일은 본가 가느라 이틀 연속 빠지고 말았다. 데헷
사실 오늘도 영 컨디션도 안 좋고 일도 제대로 못 하고... 하루 더 건너 뛰곤 내일 사흘치 몰아서 쓸까 하다가~ 12월 3일부터 계속되고 있는 개빡친얼굴로sns새로고침하기 중 인상적인 연설문을 봐서 기록하고 싶어 남긴다. 2년이 훌쩍 지난 글이지만...
"딸인 줄 알았으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목숨. 제가 태어났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말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것. 갖다 내버려라'는 아버지의 고함이었습니다. 피란민 아버지에게 쓸데없이 식구만 늘려준 넷째 딸. 차별이란 단어를 몰랐을 때부터 연년생 남동생이랑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쓰는 것도 천지차이였던 10살 아이의 장래희망은 가출이었습니다.
능력대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았고,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게 새빨간 거짓말인 것도 진작에 알았습니다. 동생이 불을 낼 뻔했을 때도 내가 맞았고, 동생이 재떨이를 깬 날도 내가 벌을 서면서 학교에 내는 일기장과 방에 숨겨놓는 진짜 일기장을 따로 썼던 아이. 동생의 생일은 온 동네가 알았지만 식구들도 모르던 내 생일. 미역국을 먹어본 적도 없는 아이는 마침내 18살에 집을 나와 아버지가 못 찾아오는 가장 먼 곳 부산에서 노동자가 됐습니다.
늘 배가 고팠던 공장, 남자들 배식판에 수북한 밥에 눈이 멀어 머리를 짧게 깎고 남자들 배식 줄에 선 나를 관리자들에게 일러바치던 건 남자아이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남자들에 비해 밥만 적은 게 아니라 월급도 훨씬 적다는 걸 알고 왜 똑같이 일하는데 우리가 적게 받느냐고 물으니 '남자들은 가장이 된다 아이가' 대답하던 고참들은 애를 낳고도 공장에서 일하던 엄마 가장들이었습니다.
삥땅을 했다고 영업이 끝나면 열몇살 짜리 학년들을 알몸으로 검신하던 시내버스 회사들. 막차가 들어오면 바퀴벌레들처럼 몰려와 그 희한한 광경을 벌건 눈으로 구경하던 기사들, 배차주임들, 정비사들. 21살에 들어간 조선소, 한겨울 바닷바람 난장에서 일하면서 노동해방도 아니고 남북통일도 아닌 따뜻한 국에 쌀밥을 말아 먹는 게 소원이던 아저씨들은 터져 죽고 깨져 죽고 깔려 죽고 반토막 나 죽은 귀신이 되어서야 탕국을 제사상으로 받으며 소원을 성취했습니다. 사무직들은 따뜻한 밥을 먹는데 우리는 왜 언 밥을 먹노? 어느 날 수천 명이 깡보리밥 도시락을 엎자 식당이 지어졌습니다. 차별은 감옥까지 따라와 노동자들은 대학생들보다 훨씬 더 많이 맞았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투쟁을 몰랐을 때 나는 내 존재조차 부정하는 약자일 뿐이었으나 차별에 맞서 싸우자, 나는 투쟁의 가장 적합한 조건을 갖춘 강자가 됐습니다. 투쟁의 역사 가운데 우리는 단 한 번도 저들이 내준 길을 안락하게 걸어본 적이 없습니다. 갈채를 받으며 언론의 카메라 앞에 웃어보지도 못했습니다. 누군가는 굶고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기어서 우리는 여기까지 왔습니다.
40년 전 거리에 턱을 없애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죽은 김순석과 장애인도 지하철을 타겠다는 박경석의 요구는 왜 아직도 비문명입니까? 최옥란의 죽음과 이향숙의 죽음 사이 20년, 세상은 뭐가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변희수를 죽인 건 누구의 민주주의였습니까? 수많은 이들을 죽인 건 누구의 평화였고 누구의 안보였습니까? 인간은 차별을 견디는 존재가 아닙니다. 비인간이었던 이들이 비문명적 방식으로 싸워온 결과 이 세상은 문명을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장애인들의, 성소수자들의, 이주노동자들의, 여성들의, 비정규직들의 세상은 먼저 죽은 이들의 유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들이 지은 이름들을 우리는 피 묻은 손으로 써놨습니다. 사무치게 외로운 시간들, 처절한 배제와 소외의 시간들을 견뎌야 승리는 비로소 옵디다.
결국은 우리가 이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장애인들에게 일상인 것은 장애인들에게도 일상이어야 합니다. 이성애자들에게 사랑인 것은 성소수자들에게도 사랑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성들에게 안전한 사회는 여성들에게도 안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로부터 일상을 회복했다면 아시아나, 세종호텔, 그 노동자들도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단식 27일차 파리바게트 임종린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 시급한 건 차별을 없애는 것입니다. 모두의 평등과 사랑을 위해. 미류, 종걸, 우리 모두의 승리를 위해,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발언, 차별금지법 4월 제정 쟁취 집중문화제 <평등으로 승리하자>
2022.04.23